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WWE 명예의 전당 (문단 편집) ==== 2009년 헌액자 ==== * '''[[스티브 오스틴|"STONE COLD" 스티브 오스틴]]''' * [[리키 스팀보트|리키 "THE DRAGON" 스팀보트]] * 빌 와츠: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모터. 오클라호마 스탬피드의 원조다. 1960년대 중반 WWWF에도 데뷔해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태그팀으로 활동했으나 얼마 못 가 턴힐해 대립했다. 1960년대 말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를 설립해 단체 에이스 겸 각본진 수장으로 재직했다. 1979년 NWA에서 탈퇴해 UWF란 단체를 만들어 WWF와 NWA에 대항하면서 [[스팅(프로레슬러)|스팅]] 같은 유망주도 발굴해냈지만 1980년대 말 미국 남부의 불황으로 단체 흥행에도 타격을 입으면서 결국 UWF를 매각했다. 이후 WCW의 부사장을 맡아 일선에 복귀하지만 친아들 에릭 와츠를 대놓고 밀어주는 등의 행동으로 이에 반발한 기존 선수들의 이탈과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1993년 WCW에서 나왔다. * [[프리츠 폰 에릭#s-2|폰 에릭 패밀리]] (프리츠 & 케빈 & 데이비드 & [[텍사스 토네이도|케리]] & 마이크 & 크리스): 케빈 제외 사후 추증. * 더 펑크스 (도리 Jr. & [[테리 펑크|테리]]) 도리 펑크 주니어는 원래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선수였다가 1963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69년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후 4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로 칭송받기도 했다. 1980년대 말 동생 테리와 함께 카우보이 기믹으로 WWF에 데뷔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트레이너로서도 많은 제자들을 육성했고, 197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던 것을 계기가 돼 전일본에 외국인 계약을 주선하기도 했다. [[프로레슬링/기술/관절기#s-2.4.2|클로버리프]]의 원조다. 테리 펑크도 형과 마찬가지로 대학 때까지 미식축구를 하다가 1965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1975년 잭 브리스코를 상대로 이기면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됐는데, 형제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된 건 펑크 형제가 처음이었다. NWA 챔피언이 되면서 이미 실력은 인정받았음에도 하드코어 매치나 데스매치에 도전하거나 50이 넘은 나이에 [[문설트]]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보통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베테랑들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까봐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는 걸 꺼리지만 ECW 시절에는 신진 육성을 위해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지는 것도 거리낌 없이 했다. 다만 매번 은퇴를 번복하며 일흔이 되고도 경기에 나설 정도로 과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진통제를 달고 사는데다, 진통제 남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그의 현역시절 경기를 보면 알수 있지만 대단히 위험천만한 경기들이 많다. 특히 ECW는 온갖 흉기들이나 상당히 과격한 경기로 악명높은 프로모션이라 믹 폴리만큼이나 혹사와 학대가 엄청났다.]. 근육맨의 등장인물 테리맨의 모티브다. 본인은 테리맨의 존재를 알고 "나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면서 나에겐 1달러도 안주냐."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했는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 [[코코 B. 웨어]]: 1980년대 WWF에 데뷔해 앵무새 프랭키를 데리고 다니며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때 [[오웬 하트]]와 하이 에너지란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하워드 핑클: WWWF 시절이던 197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WWE 링 아나운서를 맡았다. [[릴리안 가르시아]]가 정식으로 RAW 링 아나운서를 맡으면서 이후로는 WWE 홍보부에서 일했다. 2020년 만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